버스는 끝까지 서두르지 않았다. 그 버스에서 내린 자리는, 어제 아침 내가 모르고 지나친 골목이었다.
지옥 일곱 곳을 다 돌고 벳부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가득 찼다. 흡사 서울의 퇴근길 버스 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오늘 종일 일본 버스를 타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이 버스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구조부터 다르다. 가운데 문으로 타서 앞으로 내린다. 탈 때 번호가 찍힌 작은 종이를 한 장 뽑는데, 세이리켄(整理券)이라고 부른다. 앞쪽 전광판에 번호별 요금이 떠 있고, 내릴 때 그 번호에 해당하는 돈을 운전석 옆 요금함에 넣는다. 탄 거리만큼 내는 방식이라 미리 낼 수가 없다. 그러니 내리는 사람은 반드시 앞까지 걸어 나와야 하고, 버스는 그동안 서 있어야 한다.
하차벨을 누르면 버스가 선다. 기사님은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지나 요금을 넣고 내릴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준다. 재촉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승객 쪽도 마찬가지다. 버스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아무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안내도 그렇게 되어 있다 —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린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시라고.
처음에는 사람들 성격이 느긋해서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서두르지 않는 게 아니라, 서두를 수 없게 설계해 둔 것이다. 요금을 내야 내릴 수 있으니 기사는 기다릴 수밖에 없고, 기다리는 것이 기본값이 되면 재촉이 오히려 예외가 된다. 한 사람이 천천히 내리는 만큼 모두가 늦어지지만, 그 대신 아무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넘어지지 않는다. 차내 사고를 막겠다고 국토교통성이 매뉴얼까지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한참을 달리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탄 버스는 산 쪽으로 올라갔는데, 돌아오는 이 버스는 벳부만(別府湾)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온다. 같은 1일권으로 타는 같은 회사 버스인데 전혀 다른 길이다.
점심을 편의점 간식과 구운 달걀, 그리고 푸딩 하나로 대충 때우고 하루 종일 걸었던지라 허기가 막 올라오던 참이었다. 그때 생각났다. 이곳에 오면 꼭 가봐야 할 식당들을 미리 저장해 둔 것이 있었는데, 그중에 텐동으로 유명한 집이 하나 있었다. 벳부역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내리면 딱 맞게 그곳에 들를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버스 동선을 확인하고 딱 맞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와이드 1일권을 마지막까지 아주 야무지게 사용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려서 마주한 풍경이 낯익었다. 바로 어제 아침에 달렸던 그 바닷가 초입이었다. 그것도 내가 이미 지나갔던 경로 위에 그 식당이 있었다. 그때는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 내 저녁을 책임질 곳이었다니.

식당에 들어서니 많은 이들이 삼삼오오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현지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광객인 것 같았다. 한 명이라고 하니 자리를 안내해 줬다. 메뉴판에 1번 추천 메뉴로 올라 있는 새우 텐동을 주문했다. 그리고 물과 차는 서비스니 마음껏 가져다 드시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차를 어떻게 가져오나 유심히 보았더니, 저편에 커피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가 있었다. 뜨거운 녹차, 차가운 녹차 중에 고르고 컵을 가져다 대면 나오는 방식이었다. 따뜻한 녹차 한 잔이 오늘 하루 지친 몸을 따스하게 감쌌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어떤 다른 음식들이 있나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다음에 다시 오면 먹을 것을 미리 찜해두고 싶었다.
드디어 내가 주문한 텐동이 나왔다.

텐동(天丼)은 「天ぷら丼」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밥 위에 갓 튀긴 튀김을 올린 덮밥인데, 핵심은 튀김을 그냥 얹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간장과 미림과 설탕을 졸인 진한 양념에 한 번 담갔다가 올린다. 그래야 튀김옷에 단짠이 배고, 그 양념이 아래 밥으로 흘러내린다. 언제 생겼는지는 에도 말기부터 메이지까지 설이 여럿이라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데, 어느 설이든 공통점은 있다. 비싼 요리가 아니라 빨리 먹고 나가는 서민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20년대에 한 그릇 3전이었다고 한다.
내가 시킨 것은 특상천동 특성(特上天丼 特盛). 기본이 큰 새우 두 마리인데 특성은 세 마리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릇 지름보다 새우가 길다.

한국에서도 텐동을 가끔 맛보긴 하지만 이 지역의 진짜 텐동을 먹고 싶어서 시킨 것이다. 내가 배고픈 상태인 탓도 있겠지만 진짜로 맛이 있었다. 새우도 싱싱해 보였다. 오이타는 바다를 세 개나 끼고 있는 고장이라고 한다. 세토내해 쪽의 부젠카이(豊前海), 지금 내가 머무는 벳부만, 그리고 세토내해의 조류와 태평양 흑조가 부딪히는 분고수도(豊後水道). 그 분고수도에서 외줄낚시로만 잡아 올리는 세키아지·세키사바가 이 현의 자랑이라고 한다. 생선이 좋은 고장에서 먹는 튀김이라 그런지 괜히 더 믿음이 갔다.
튀김 아래의 간장 밥도 간이 딱 맞아서 밥 한 톨까지 깨끗이 비웠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까 메뉴판에서 찜해둔 것은 「오이타 명물」이라고 적혀 있던 류큐 돈부리다. 류큐(りゅうきゅう)는 생선회를 간장·설탕·술·참깨·생강으로 만든 양념에 재워 밥에 얹거나 오차즈케로 말아 먹는 오이타 향토 음식이라고 한다. 원래는 어부들이 배 위에서 먹던 끼니이자 보존식이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해진다. 오이타 어부가 오키나와(琉球) 어부에게 조리법을 배워 왔다는 설, 그리고 참깨로 무친 것을 「리큐아에(利休和え)」라 부르는 데서 왔다는 설. 이 지역의 명물이라면 꼭 한번 맛보고 싶었다.


음식값을 치르고 정말 맛있었다고 인사하고 식당을 나섰다.

어제 아침에는 이 앞을 달려서 지나갔다. 간판도 보지 않았고, 여기가 뭐 하는 집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 자리가 오늘 내 하루의 가장 따뜻한 한 그릇이 되어 있었다. 열흘을 사는 동안 이 도시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자리가 아직 몇 군데나 남아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엿새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