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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살이 벳부

4일차 · 10/1 목 · 로프웨이 · 7편 중 2

올라와 보니 또 다른 풍경

Leave before you miss home.

어제는 등대에서 뒤돌아봤고, 오늘은 산 위에서 내려다본다. 같은 땅이 두 번 다르게 보였다.

이 도시를 만든 산

버스 안에서 산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쓰루미다케(鶴見岳). 벳부 바로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1,375미터짜리 산인데, 알고 보니 이 벳부 지역을 있게 만든 산이 저 산이다. 지하 마그마가 빗물을 데워 올려 보내니까 도시 여기저기에서 김이 오르는 것이고, 온천도 지옥도 관광객도 어제 본 구마하치의 사업도 결국 저 산에서 나온 열 덕분이다. 로프웨이는 그 산 중턱에서 정상 가까이까지 한 번에 올려준다. 그러니까 오늘 올라가는 곳은 전망대이기 전에 이 도시의 근원인 셈이다.

한가하게 올라갔다

로프웨이까지는 30분 걸렸나 40분 걸렸나,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착했더니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09:08 — 곤돌라가 산을 오른다
09:08 — 곤돌라가 산을 오른다

아래쪽 역이 해발 500미터쯤이고 산 위 역이 1,300미터쯤이니, 10분 동안 800미터를 올라가는 셈이다.

09:20 — 유리창마다 한 사람씩 붙어도 자리가 남았다
09:20 — 유리창마다 한 사람씩 붙어도 자리가 남았다

곤돌라는 꽤 컸는데 여섯 명이 탔다. 아닌가, 한 열 명 탔겠구나. 어쨌든 유리창마다 한 사람씩 붙어도 자리가 남았다. 그래서 되게 한가하게 경치도 보고 풍경도 보면서 올라갈 수 있었다.

천 년 동안 몸을 데워주는 열

올라가기 전에 이 산에 대해 조금 더 알아두고 올라갔다. 쓰루미다케는 활화산으로 분류돼 있다.

활화산이라는 말에 놀랄 것은 없다. 기록에 남은 마지막 분화가 867년이라고 하니 천 년이 넘었다. 다만 일본에서는 1만 년 안에 한 번이라도 분화했고 지금도 활동 흔적이 있으면 활화산으로 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산은 터지지 않은 채로 계속 살아 있는 산이다.

그 열이 어디로 가는가 하면, 전부 온천으로 나온다. 벳부에서 하루에 솟는 온천수가 13만 톤이라는데, 그게 다 이 산이 아직 숨 쉬고 있다는 표시다.

한꺼번에 뿜어내야 될 열기를 천 년이 넘게
서서히 사람들의 몸을 데워주는 열기로 제공해 주고 있는 거네.

어제 내 몸을 데워준 그 물도 결국 저 산에서 온 것이다. 그걸 알고 올라가니 창밖이 그냥 산이 아니었다.

09:26 — 저 아래 김이 오르는 자리들이 전부 이 산의 숨구멍이다
09:26 — 저 아래 김이 오르는 자리들이 전부 이 산의 숨구멍이다

정상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09:38 — 정상의 토리이
09:38 — 정상의 토리이
09:48 — 鶴見岳 頂上 1375m
09:48 — 鶴見岳 頂上 1375m

정상은 화려한 모습이 아니었다. 되게 단조롭게 — 큼직한 정상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무 표지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 길이 여러 갈래로 퍼져 있어서 “여기가 꼭대기다” 하는 느낌도 약했다. 정상이라기보다는 그냥 작은 봉우리, 그런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걸어서 땀 흘리며 올라온 사람에게 주는 보상 같은 지점이 없는 것이다. 곤돌라가 10분 만에 거의 다 올려다 주니까.

09:54 — 반대쪽을 보니 규슈 알프스라고 하더라
09:54 — 반대쪽을 보니 규슈 알프스라고 하더라

대신 사방이 트였다. 산 쪽으로 돌아서니 규슈 알프스라고 부른다는 산줄기가 겹겹이 보였다. 저쪽이 훨씬 산다운 산이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되게 좋은 전망대를 갔다 왔다, 그런 느낌이었다.

어제는 뒤돌아봤고, 오늘은 내려다본다

10:06 — 벳부만
10:06 — 벳부만

그리고 바다 쪽으로 돌아섰다. 벳부만이 완전 잘 보이고, 어제 아침에 뛰었던 그 바닷가도 보이고, 어디쯤에 내가 갔었나도 다 보였다. 너무 좋은 날씨에 잘 올라온 것 같다.

10:06 — 어제 달렸던 해변을 손으로 재봤다
10:06 — 어제 달렸던 해변을 손으로 재봤다

어제 아침에 달렸던 벳부 타워 앞 그 해변을 쳐다보고 손으로 재보니 정말 한 뼘도 안 된다. 어제는 등대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더니.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크게 느껴졌던 것들도,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정말 작은 거구나.

어제는 뒤돌아 보니까 다른 풍경이었는데,
오늘은 올라와 보니까 또 다른 풍경이네.
내가 걸었던 풍경도 보이고,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말이야.

어제는 방파제 끝에서 뒤로 돌아 지나온 길을 봤고, 오늘은 산 위에서 그 길 전체를 내려다본다. 같은 땅을 이틀 동안 두 번, 다른 방식으로 본 셈이다.

사실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티끌만한 지구 안에 티끌만한 나라에, 거기 티끌만한 도시에, 티끌만한 존재로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막 부딪히면서 살아야 되나.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야 할 어떤 마음은 필요하지만, 너무 그렇게 얽매여서 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다. 가끔은 너무 가까이서만 보고 있지 말고, 이렇게 좀 멀리 떨어져서 관망하는 시간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산을 지키는 신들

10:04 — 쓰루미산 칠복신 순례
10:04 — 쓰루미산 칠복신 순례

내려오는 길은 산책로로 잡았다. 쓰루미다케는 옛날부터 신이 사는 산으로 모셔진 곳이라, 정상 일대에 석상과 작은 사당이 흩어져 있다. 그중 하나가 칠복신, 복을 가져다준다는 일곱 신이다. 어제 상점가 간판에서 본 바로 그 일곱 신이기도 하다. 도시 아래에도 있고 산 위에도 있는 셈이다.

10:04 — 포대존(布袋尊). 새전함이 앞에 놓여 있다
10:04 — 포대존(布袋尊). 새전함이 앞에 놓여 있다

오면서 석상들이 하나 둘 있는 걸 지켜봤다. 전부 다 보지는 못했는데, 지나가면서 발견한 신들 앞에서 간단하게 내가 아는 사람들의 건강, 행복, 즐거움을 빌었다. 그냥 내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나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 가까이에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빌었다.

10:13 — 내려오는 길의 작은 사당
10:13 — 내려오는 길의 작은 사당

거기 작은 신당에서 앞사람이 동전 100엔을 넣고 명주실 더미 같은 것을 만지길래, 나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잔돈이 있어서 넣고 따라 해봤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끝내 모른 채로.

10:14 — 앞사람이 하는 대로
10:14 — 앞사람이 하는 대로

그 순간은 되게 숙연해지더라. 뜻도 모르면서 손이 먼저 따라 하는데, 그 짧은 사이에 마음이 조용해졌다.

넓이와 깊이

내려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아는 것과 머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아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알게 되는 것의 넓이를 말한다면, 머무는 것은 깊이를 말하는 것 같다.

이미 온천을 경험했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봤었기 때문에, 올라가서 보면 “아, 저것 때문에 우리가 온천을 할 수 있구나” 이런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똑같은 곤돌라를 타고 똑같은 10분을 올라가도, 아래에서 사흘을 산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다르다.

10:34 — 다시 버스. 이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
10:34 — 다시 버스. 이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

이제 내려가서, 저 김이 오르던 자리 중 한 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