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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살이 벳부

3일차 · 9/30 수 · 아침 · 4편 중 1

멀찍이 떨어져서 뒤돌아보면

Leave before you miss home.

바다에서 해가 올라왔다. 방파제 끝까지 가서 지나온 길을 돌아봤고, 250엔짜리 탕에 몸을 담갔다.

아직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

06:35 — 같은 창, 다른 하늘. 어제는 종일 흐렸다
06:35 — 같은 창, 다른 하늘. 어제는 종일 흐렸다

새벽에 냉장고 소리에 잠이 깼다. 너무 시끄러워서 결국 냉장고를 끄고, 음식은 냉동실로 옮겨 놓은 채로 나왔다. 오늘부터는 낮에 얼음을 얼려두고 밤에는 냉동실을 석빙고처럼 쓰기로 했다. 호스트한테 바꿔달라고 하고 싶기도 했는데 괜히 복잡할 것 같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꾀를 냈다.

06:38 — 셔터가 다 내려간 상점가. 어젯밤의 그 길이다
06:38 — 셔터가 다 내려간 상점가. 어젯밤의 그 길이다

지금은 아침 6시 40분인데 아직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다. 어제 가보지 못했던 골목으로 가니까 완전히 또 다른 곳이다.

06:41 — 큰길 끝에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06:41 — 큰길 끝에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06:43 — 어젯밤 붉게 빛나던 타워. 아침에는 그냥 철탑이다
06:43 — 어젯밤 붉게 빛나던 타워. 아침에는 그냥 철탑이다

바다에서 해가 올라온다

해가 앞에서 비추고 있어서, 뭔가 멋있게 바다 등장을 보여주려고 하는 모습이다. 조금만 뛰어가면 바다가 보인다.

06:45 — 바다가 나왔다
06:45 — 바다가 나왔다
06:45 — 그리고 오른쪽에 해가 떠올랐다
06:45 — 그리고 오른쪽에 해가 떠올랐다

벳부만이 너무 멋지다. 만이 동쪽으로 열려 있어서 해가 물 위에서 바로 올라온다고 한다. 어젯밤 어둡기만 하던 그 바다와 같은 자리라는 게 안 믿길 정도다.

06:45 — 어제는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06:45 — 어제는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확실히 밤에 보는 풍경하고 낮에 보는 풍경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인생도 그렇다.
좋을 때 나쁠 때 슬플 때 기쁠 때 다 다른 모습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렇게 자주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등대는 보이는 것보다 멀다

06:50 — 해를 정면에 두고 북쪽으로
06:50 — 해를 정면에 두고 북쪽으로

어젯밤에는 걸어와서 몰랐는데 왼쪽 코스가 생각보다 짧았다. 저기 등대 보이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06:50 — 인공 백사장. 뒤로 보이는 게 쓰루미다케다
06:50 — 인공 백사장. 뒤로 보이는 게 쓰루미다케다

그런데 등대가 보이는 것보다 꽤 멀리 있었다. 한참을 더 가야 했다.

가까이 보여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방금 전에 가까운 등대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06:55 —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구간
06:55 —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구간
07:00 — 방파제 안쪽은 어항이었다
07:00 — 방파제 안쪽은 어항이었다

뒤돌아보면

방파제 끝 등대까지 왔다. 꽤 멋진 풍경이다. 멀리서 보던 것과 가까이서 보는 풍경은 꽤 다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는가.

07:01 — 여기까지 와서 돌아보니 도시 전체가 한 장면으로 들어왔다
07:01 — 여기까지 와서 돌아보니 도시 전체가 한 장면으로 들어왔다
내가 분명히 지나온 풍경인데 멀찍이 떨어져서 뒤돌아보면
“아, 저 풍경이 저렇게 멋진 모습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된다는 거지.
그런 게 참 좋은 것 같다.

지나올 때는 발밑만 보인다. 방파제 끝까지 나가서 돌아봐야 도시 전체가 한 장면으로 들어온다. 안에 있으면 안 보이고, 나와야 보인다. 살아온 시간도 그런 것 같다. 겪는 중에는 그냥 힘들기만 한데, 몇 년 지나 돌아보면 그게 제일 좋은 시절이었던 걸 알게 되고.

내가 이렇게 혼자서 멀리 떠나온 이유도
나의 삶을 좀 뒤돌아보고 멀찍이서 반조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오하요고자이마스

달리는 중에 아침 산책 나온 분들을 몇 번 마주쳤다. 처음에는 눈인사만 했다. 그다음 어르신께는 소리를 내어 인사했더니 받아주셨다. 한 분은 안 받아주셨다. 그래도 계속 했다. 나중에 지나간 아주머니한테는 웃으면서 큰 소리로 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강아지한테도 했다.

세상은 항상 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내가 무서워서 다가가지 않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결국은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내가 어딘가로 들어가는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나를 받아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때가 스스로 오지는 않는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우리한테는 작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작은 실패에도 굽히지 않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끈기. 이런 게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작은 성취, 작은 성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다음에는 조금 더 잘해봐야지, 조금 더 주저하지 말고 해봐야지”라고 하는 조금 더 큰 욕심이다. 그것이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더 크게 만들어준다. 일단 해봐야 작은 성공을 하고, 작은 성공을 해봐야 조금 더 큰 성공을 위해 계속 달릴 수 있다.

아주머니한테 웃으면서 큰 소리로 인사할 수 있었던 것도, 앞서 어르신들이 인사를 받아줬다는 작은 성공 체험 덕분이 아닐까.

나무 그늘, 바다, 그리고 굴뚝

나무로 그늘진 바닷길을 달린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왼쪽에는 출렁거리는 바다가 있고, 그리고 저 멀리에는 오이타에 있는 공장의 굴뚝이 연기를 뿜고 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오늘 아침의 모습이 될 것 같다.
07:18 — 일터로 향하는 차들
07:18 — 일터로 향하는 차들

이런 아침 시간이라 도시에 일터로 향하는 바쁜 차들이 보인다. 이런 풍경 속에 나를 넣어보면 ‘와, 그래 다들 저렇게 바쁘게 사는구나’ 싶다. 나도 그 와중에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일을 하려고 이곳에 왔다, 이런 생각이 있지 않은가. 꽤 괜찮다.

07:25 — 길바닥에 도미가 그려져 있다
07:25 — 길바닥에 도미가 그려져 있다

달릴 만한 길이 많다. 만약에 관광을 하러 왔으면 전혀 들르지 못할 곳까지도 둘러보게 되는 게 달리기다. 오늘 진짜 이 도시에, 이 마을에 속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디를 가든 관광객들이 빠르게 찍고 다니는 핫스팟들만 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거 봐봤자 별로 감동도 없고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다만 ‘나 거기 가봤어’라고 누구한테 자랑할 것은 되겠지. 근데 내 안에 남는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구석구석을 가볍게 살펴보면서, 또 특히나 기대 없이 살펴보면서 만나는 풍경들은 꽤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는 기억이 되어준다.

07:26 — 폰을 바닥에 놓고 찍었다. 5.02km, 30분 44초
07:26 — 폰을 바닥에 놓고 찍었다. 5.02km, 30분 44초

5.02킬로미터를 뛰었고 6분 7초 페이스로 30분 44초가 걸렸다. 어제 술도 좀 마시고 해서 페이스가 좋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뛴 것 치고 꽤 잘했다. 땀도 쫙 났다. 아주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고 있어서 너무 좋다.

우리가 운동을 하든 일을 하든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거는,
내가 살아갈 만한 멋진 명분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제 들은 사람을 오늘 아침에 만났다

숙소에 들러 물 한 모금 마시고 온천 가방을 들고 다시 나섰다. 러닝 차림 그대로 크록스만 꿰어 신은, 가까운 동네 마실 나가는 복장이다. 골목을 요리조리 다니니 신기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07:33 — 골목 안에 이런 것이 있었다. 이름은 모르겠다
07:33 — 골목 안에 이런 것이 있었다. 이름은 모르겠다

그러다 큰길가에서 낯익은 이름을 봤다. 가메노이 호텔. 어제 저녁에 이야기로만 들은, 아부라야 구마하치가 1911년에 세운 그 호텔이다. 어제 “가봐야 할 곳”에 적어둔 곳을 오늘 아침에 우연히 지나친 것이다. 지금 건물은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것이고 창업자 일가의 손도 떠났지만, 벳부 관광이 시작된 자리는 여기다.

07:55 — 들어가 보기로 했다
07:55 — 들어가 보기로 했다

로비에 들어갔더니 있었다. 구마하치의 사진도 있고 전시가 되어 있었다.

07:56 — 그 손도장. 어제는 길바닥에서 봤다
07:56 — 그 손도장. 어제는 길바닥에서 봤다
07:56 — 메이지 44년(1911) 10월 창업 당시의 가메노이 여관
07:56 — 메이지 44년(1911) 10월 창업 당시의 가메노이 여관
07:56 — 1927년, 일본 최대급 25인승 버스 네 대로 시작한 지옥순례
07:56 — 1927년, 일본 최대급 25인승 버스 네 대로 시작한 지옥순례
07:56 — 그리고 이것
07:56 — 그리고 이것

1931년 창업 20주년 기념 「전국 손바닥 대회(全國大掌大會)」 포스터다. 손바닥 크기를 겨루는 대회를 열어 현 안팎의 유명인을 불러 모았고, 그게 화제가 되어 벳부 온천 대선전으로 이어졌다고 적혀 있다. 어제 상점가 바닥에서 본 그 손도장이 바로 이것과 이어진다. 손바닥 하나로 이벤트를 만든 사람이다.

그 역사적인 장소를 실제로 와서 그런 포스터들도 보고 하니까 너무 좋다.

순서가 좋았다. 어제 동상과 손도장을 먼저 보고 이야기를 들었으니, 오늘 이 포스터가 그냥 옛 그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도 탕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것이다. 기대 없이 걷다 만난 게 오래 남는다는, 조금 전에 한 말 그대로다.

늙지 않는 샘

08:09 — 不老泉. ‘늙지 않는 샘’이라는 뜻이다
08:09 — 不老泉. ‘늙지 않는 샘’이라는 뜻이다

오늘은 어제 간 카이몬지 말고 새로운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후로센. 벳부역 서쪽 골목에 있는 시영탕이고 숙소에서 700미터쯤이다. 불로장생의 그 불로다. 옛날부터 온천물이 몸을 낫게 하고 젊음을 지켜준다고 믿었으니 온천 이름으로는 최고의 작명이다.

08:09 — 6:30~22:30. 10월 5일(월)은 휴관이라고 붙어 있다
08:09 — 6:30~22:30. 10월 5일(월)은 휴관이라고 붙어 있다
08:10 — 입욕권. 1인 1회 한정, 9월 30일
08:10 — 입욕권. 1인 1회 한정, 9월 30일

250엔이었다. 어제 갔던 곳보다 꽤 쾌적해서 훨씬 더 목욕하기가 좋았다. 탕도 조금 더 크고, 씻을 수 있는 자리도 어제는 네 군데였는데 여기는 여덟 군데다. 같은 요금인데 말이다. 온천물도 생각보다 많이 뜨겁지 않아서 열탕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어제 한 번 해서 적응이 된 건가.

08:45 — 달리기하고 나서 씻고 옷 갈아입고 나니 개운하다
08:45 — 달리기하고 나서 씻고 옷 갈아입고 나니 개운하다

다만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탕별로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몇 군데 둘러보는 건 의미가 있지만, 이런 시영탕을 여러 군데 왔다 갔다 하는 건 굳이 필요 없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 번씩 갈 게 아닐 것 같아서 회수권도 살 필요가 없겠다. 250엔씩 내고 내키는 대로, 가고 싶은 데 가면 될 것 같다.

생활의 리듬

08:58 — 내일 또 뛰고 또 탕에 가려면 이걸 먼저 돌려야 한다
08:58 — 내일 또 뛰고 또 탕에 가려면 이걸 먼저 돌려야 한다

숙소에 돌아와 운동복과 수건을 세탁기에 넣었다. 내일 아침 운동과 온천을 위해서다. 널어놓고 나갈 참이다.

09:06 — 어제 반값에 산 도시락
09:06 — 어제 반값에 산 도시락

어제 유메타운에서 반값 스티커 붙은 걸 사둔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는다. 전날 슈퍼에서 할인하는 도시락을 미리 사두는 루틴은 꽤 괜찮은 것 같다. 아침에 또 밥 먹을 데를 찾아다니는 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지 않은가. 그 시간을 러닝과 온천에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아, 뭔가 생활의 리듬이 잡히는 것 같지 않은가.
러닝, 온천, 도시락, 그리고 낮에 일.

이제 업무 장소를 찾아 나선다. 제안서도 보낼 것이 있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한다. 오늘 일을 좀 많이 봐둬야 내일 나들이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침에 아버지한테 연락이 왔다. 어제 보낸 링크의 사진이 안 보인다고. 새 링크를 보내드렸다. 이 기록들은 함께 오지 못한 부모님께 이국의 정취를 전해드리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매일 쓸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