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쪽 자리를 고르느라 애썼는데, 고쿠라에서 의자가 돌아가자 창문이 사라졌다.


하카타역에서 벳부역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 서울서 대전 정도의 거리이다. 내 자리는 중앙의 간격이 넓은 좋은 자리였다. 마침 옆자리도 비어 있어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노트북을 꺼내서 뭔가를 해볼까 하다가, 어젯밤 짐승들 때문에 잠을 설친 터라 잠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도시락은 기대 이상이었다. 650엔에 이만큼이면 훌륭하다. 창밖으로 규슈의 논밭이 지나가고, 무릎 위에서 밥을 먹는다. 이동 중인데 이동 같지 않았다.

잠시 있다가 깨어보니 중간역이다. 역 이름이 거꾸로… 뭐 이런 식이다. 기차가 진행 방향을 바꾸는 곳이다. 돌아올 수 없는 구간을 들렀다 가야 하기 때문에, 이 역에서 열차는 반대로 움직이면서 오이타까지 간다.

여기에서 방송이 나온다. 의자를 돌리라고. 사람들이 일어서서 하나둘 자연스럽게 의자를 돌린다. 나도 돌린다. 아뿔싸… 돌리고 나니 내 자리는 창문이 없는 벽자리다. 이걸 체크를 못 했다. 바깥 풍경을 잘 보겠다고 잡은 자리였는데 의자를 돌리니 벽인 자리였다.
결국 답은 8A였다. 7A가 아니라. ^^
이건 직접 경험해본 사람 아니고는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청 고민해서 고른 자리였는데 벽을 보면서 가야 하다니. 덕분에 더 자기로 했다. ㅋㅋ 조삼모사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조금 더 눈을 붙이고 나니 다음 역은 벳부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다 못 알아들어도 내가 관심 있는 말은 이상하게도 잘 들린다. 드디어 벳부에 도착한다. 미리 나가서 동그란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다. 확실히 풍경이 달라졌다. 새로운 곳에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설렘은 항상 좋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좋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도착한 벳부역은 작은 시골 마을의 간이역보다 조금 큰 느낌이었다. 역을 나서자 활기찬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온천 도시답게 바로 손을 담글 수 있는 온천수가 샘솟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벳부 온천 관광의 아버지 격인 아부라야 구마하치의 동상이 있다. 이 사람이 벳부의 영웅 같은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이 문구가 왜 돌에 새겨져 역 앞에 서 있는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뭔지 잘 모르는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온천수에 손도 한번 담가보고, 이제 숙소를 찾아 나선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가성비 숙소. 아침 운동하기 좋고, 온천도 가깝고, 맛집들도 많은 그런 곳으로 잡았다. 역에서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번호키를 이메일로 받은 터라 별다른 체크인 절차 없이 숙소에 입장할 수 있었다.
드디어 왔다. 수고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아기자기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그런 곳이다.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 9일을 지낸다. 과연 어떤 일들이 이곳에서 쌓이게 될지 기대가 된다.

호텔에는 없고 이런 집에만 있는 것들이 있다. 세탁기, 전자레인지, 수저통. 짐을 풀면서 생각했다. 이건 짧게 머무는 사람의 짐이 아니구나.

아침에 메일로 문의가 온 두 곳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메일로 온 교육 요청에 메일로 답해도 된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전화를 하고, 과연 어떤 목적으로 이 교육을 수강하고 싶은지 등등 다양한 내용을 직접 듣고 나면, 정말 고객이 원하는 제안서를 꾸며서 보낼 수 있다.
분명 고객들도 우리 요청에 진지하게 임해준다는 생각에, 우리의 제안을 다른 곳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제안서를 작성할 때에는 항상 통화를 통해 파악한 내용이 이렇게 반영되었음을 꼭 강조해서 발송한다. 그러면 거의 백발백중이다.
경쟁은 사실 의미가 없다.
내가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부 문제일 뿐이다.
한 시간에 걸쳐 두 곳의 인터뷰를 잘 정리했다. 내일 아침까지 제안서를 보내주기로 했다. 아마 두 곳 다 잘 될 것이다. 항상 진심은 통하기 때문에. 게다가 이렇게 멀리 떠나온 이유를 당당하게 증명이라도 해주는 미션이기에, 잘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떠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