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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살이 벳부

2일차 · 9/29 화 · 4편 중 2

7A가 아니라 8A였다

Leave before you miss home.

바다 쪽 자리를 고르느라 애썼는데, 고쿠라에서 의자가 돌아가자 창문이 사라졌다.

7A가 아니라 8A였다

12:44 — 승강장. 먼저 들어온 주황색 편성의 2호차 지정석
12:44 — 승강장. 먼저 들어온 주황색 편성의 2호차 지정석
12:50 — 특급 소닉 오이타행. 2호차 지정석
12:50 — 특급 소닉 오이타행. 2호차 지정석

하카타역에서 벳부역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 서울서 대전 정도의 거리이다. 내 자리는 중앙의 간격이 넓은 좋은 자리였다. 마침 옆자리도 비어 있어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노트북을 꺼내서 뭔가를 해볼까 하다가, 어젯밤 짐승들 때문에 잠을 설친 터라 잠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12:54 — 붉은 가죽에 나무 바닥. 헤드레스트가 귀처럼 솟아 있다
12:54 — 붉은 가죽에 나무 바닥. 헤드레스트가 귀처럼 솟아 있다
13:43 — 붉은 가죽 시트와 나무 바닥
13:43 — 붉은 가죽 시트와 나무 바닥
13:13 — 650엔짜리 점심. 기차에서 먹으니 더 맛있다
13:13 — 650엔짜리 점심. 기차에서 먹으니 더 맛있다

도시락은 기대 이상이었다. 650엔에 이만큼이면 훌륭하다. 창밖으로 규슈의 논밭이 지나가고, 무릎 위에서 밥을 먹는다. 이동 중인데 이동 같지 않았다.

13:45 — こくら. 여기서 일이 벌어진다
13:45 — こくら. 여기서 일이 벌어진다

잠시 있다가 깨어보니 중간역이다. 역 이름이 거꾸로… 뭐 이런 식이다. 기차가 진행 방향을 바꾸는 곳이다. 돌아올 수 없는 구간을 들렀다 가야 하기 때문에, 이 역에서 열차는 반대로 움직이면서 오이타까지 간다.

13:41 — 좌석 밑의 이 페달. 이걸 밟고 의자를 통째로 돌린다
13:41 — 좌석 밑의 이 페달. 이걸 밟고 의자를 통째로 돌린다

여기에서 방송이 나온다. 의자를 돌리라고. 사람들이 일어서서 하나둘 자연스럽게 의자를 돌린다. 나도 돌린다. 아뿔싸… 돌리고 나니 내 자리는 창문이 없는 벽자리다. 이걸 체크를 못 했다. 바깥 풍경을 잘 보겠다고 잡은 자리였는데 의자를 돌리니 벽인 자리였다.

결국 답은 8A였다. 7A가 아니라. ^^
이건 직접 경험해본 사람 아니고는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청 고민해서 고른 자리였는데 벽을 보면서 가야 하다니. 덕분에 더 자기로 했다. ㅋㅋ 조삼모사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벳부

14:46 — 동그란 창. 풍경이 확실히 달라졌다
14:46 — 동그란 창. 풍경이 확실히 달라졌다

조금 더 눈을 붙이고 나니 다음 역은 벳부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다 못 알아들어도 내가 관심 있는 말은 이상하게도 잘 들린다. 드디어 벳부에 도착한다. 미리 나가서 동그란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다. 확실히 풍경이 달라졌다. 새로운 곳에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설렘은 항상 좋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좋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14:55 — 1번 승강장. 도착
14:55 — 1번 승강장. 도착
14:56 — ようこそ別府
14:56 — ようこそ別府

도착한 벳부역은 작은 시골 마을의 간이역보다 조금 큰 느낌이었다. 역을 나서자 활기찬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온천 도시답게 바로 손을 담글 수 있는 온천수가 샘솟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벳부 온천 관광의 아버지 격인 아부라야 구마하치의 동상이 있다. 이 사람이 벳부의 영웅 같은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14:58 — 역 앞에서 그냥 솟는다. 손을 담글 수 있다
14:58 — 역 앞에서 그냥 솟는다. 손을 담글 수 있다
15:00 —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내해, 온천은 벳부
15:00 — 산은 후지, 바다는 세토내해, 온천은 벳부

이 문구가 왜 돌에 새겨져 역 앞에 서 있는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15:00 — 모자를 벗어 들고 손을 번쩍. 이 동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
15:00 — 모자를 벗어 들고 손을 번쩍. 이 동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

뭔지 잘 모르는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온천수에 손도 한번 담가보고, 이제 숙소를 찾아 나선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가성비 숙소. 아침 운동하기 좋고, 온천도 가깝고, 맛집들도 많은 그런 곳으로 잡았다. 역에서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번호키를 이메일로 받은 터라 별다른 체크인 절차 없이 숙소에 입장할 수 있었다.

드디어 왔다. 수고했다.

열흘 살 집

15:11 — 침대 둘. 하나는 짐 자리로 쓰기로 한다
15:11 — 침대 둘. 하나는 짐 자리로 쓰기로 한다
15:11 — 식탁과 주방. 여기서 아침을 먹게 될 것이다
15:11 — 식탁과 주방. 여기서 아침을 먹게 될 것이다

숙소는 생각보다 아기자기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그런 곳이다.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 9일을 지낸다. 과연 어떤 일들이 이곳에서 쌓이게 될지 기대가 된다.

15:12 — 세탁기와 수건. 이게 있으면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다
15:12 — 세탁기와 수건. 이게 있으면 여행이 아니라 생활이다

호텔에는 없고 이런 집에만 있는 것들이 있다. 세탁기, 전자레인지, 수저통. 짐을 풀면서 생각했다. 이건 짧게 머무는 사람의 짐이 아니구나.

17:29 — 창밖. 이 풍경을 아흐레 동안 본다
17:29 — 창밖. 이 풍경을 아흐레 동안 본다

멀리 떠나온 이유를 증명하는 일

아침에 메일로 문의가 온 두 곳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메일로 온 교육 요청에 메일로 답해도 된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전화를 하고, 과연 어떤 목적으로 이 교육을 수강하고 싶은지 등등 다양한 내용을 직접 듣고 나면, 정말 고객이 원하는 제안서를 꾸며서 보낼 수 있다.

분명 고객들도 우리 요청에 진지하게 임해준다는 생각에, 우리의 제안을 다른 곳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제안서를 작성할 때에는 항상 통화를 통해 파악한 내용이 이렇게 반영되었음을 꼭 강조해서 발송한다. 그러면 거의 백발백중이다.

경쟁은 사실 의미가 없다.
내가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부 문제일 뿐이다.

한 시간에 걸쳐 두 곳의 인터뷰를 잘 정리했다. 내일 아침까지 제안서를 보내주기로 했다. 아마 두 곳 다 잘 될 것이다. 항상 진심은 통하기 때문에. 게다가 이렇게 멀리 떠나온 이유를 당당하게 증명이라도 해주는 미션이기에, 잘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떠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