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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살이 벳부

4일차 · 10/1 목 · the HELL · 7편 중 7

꿈이 뭐냐고 물었다

Leave before you miss home.

지옥 일곱 곳을 돌고 나와, 이름이 HELL인 가게에 앉았다. 거기서 두 사람을 만났다.

지도를 켜지 않아도

모두 불이 밝혀진 이곳의 밤거리는 이미 내게 익숙한 곳이다. 지도를 켜지 않아도, 아주 조금 술에 취했어도 저절로 발길이 집 방향으로 향한다. 나흘 만에 생긴 일이다. 그렇게 걸어 집에 거의 다 와갈 무렵, 매일 지나치며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the HELL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오늘 낮에 지옥 일곱 곳을 돌고 나와서, 밤에는 이름이 HELL인 가게에 앉게 된 셈이다.

21:07 — music & drinks
21:07 — music & drinks

정식 이름은 the HELL Record & Sour다. 레코드를 틀고 제철 과일로 만든 사워를 파는 가게로, 2019년 4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주인은 이곳 APU를 나와 도쿄에서 일하다가 벳부로 돌아와 이 가게를 차린 사람이라고 한다. 벳부의 진짜 매력은 온천을 넘어 사람과 국제교류에 있다는 것이 가게를 연 이유라고 적어두었다.

좁은 통로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은 것들이 멋들어지게 꾸며져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벽을 보니 여러 소셜 이벤트를 안내하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특히 LP로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21:13 — 또 맥주다
21:13 — 또 맥주다
21:16 — 벽 한 면이 전부 포스터다
21:16 — 벽 한 면이 전부 포스터다
21:21 — 안쪽에는 작은 무대가 있다
21:21 — 안쪽에는 작은 무대가 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곳에는 APU라는 국제 대학이 있어서 여기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시끌벅적 떠들고 있는 친구들도 이 학교 학생들이었다.

온센 도지

나는 바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또 맥주다. 잠시 홀짝거리고 있을 무렵 옆자리에 앉은 다른 손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쿄에서 여행차 왔다고 했다. 도쿄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한다고 한다. 벳부의 온천이 너무 좋아서 열 번도 넘게 왔다고 했다. 나는 여기 사흘째인데 벌써 온천을 세 번 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다 엊그제 배운 말이 생각났다. 도지(湯治). 온천에 오래 머물면서 몸을 다스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벳부시 관광협회 설명으로는 천삼백 년쯤 된 풍습이고, 간나와 일대가 특히 도지의 고장이었다. 숙소 한가운데에 지고쿠가마(地獄釜)를 두고 방들이 그 둘레를 감싸는 가시마(貸間)라는 구조가 그때 생겼다고 한다. 몇 주씩 머물면서 스스로 밥을 쪄 먹고 탕에 들어가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정의다. 관광협회는 요즘 「체재 기간과 상관없이 온천에 들어가고 거기서 잠을 자면 그것으로 훌륭한 도지」라고 말한다. 주말 이삼 박짜리를 「쁘띠 도지」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열 번 넘게 온 그 사람이나 열흘을 살아보겠다고 온 나나, 둘 다 도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꿈이 뭐냐고 물었다

바에서 일하는 친구는 니꼬라는 학생이었다. APU 2학년이고 경영학인가 관광학인가를 공부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23:05 — 가게가 조금 한가해진 시간
23:05 — 가게가 조금 한가해진 시간

내가 대뜸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없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독일이나 영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한참을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꿈을 하나 정하고 그것부터 하나 둘 만들어가 보는 이야기를 해주니, 자신도 많은 것들을 도전해 볼 힘이 생겼다고 했다.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23:13 — 이름을 글자마다 풀어서 적어주었다
23:13 — 이름을 글자마다 풀어서 적어주었다

열심히 번역기를 돌려 일본어로 「あなたの夢を応援しています。」라고 해줬다. 당신의 꿈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조금씩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것 같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들르기로 했다. 단골집 등록 완료.

라멘으로 닫는다

오늘은 온전히 관광객이었다. 혼자서도 아주 잘 놀았다. 다른 날보다 술을 좀 마신 날은 탄수화물을 좀 섭취하고 자야 아침이 깔끔해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터라,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라멘집으로 향했다.

23:27 — 이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다
23:27 — 이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다

늦게 열어서 늦게 닫는 집이다. 저녁에 문을 열고 새벽 두 시까지 연다고 한다. 오십 년이 넘은 집이고, 차림표에 「쇼와 32년경 초대가 자란 구루메의 맛」이라고 적어두었다. 구루메(久留米)는 후쿠오카현의 도시인데, 1937년 그곳 역 앞 노점에서 돈코츠 라멘이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곳이다. 돼지뼈를 오래 고아 뽑은 뽀얀 국물에 가는 면을 쓰는 그 라멘이다. 이 집 차림표 맨 위에는 「替玉はありません」 — 면 리필은 없습니다 — 이라고 적혀 있다. 하카타에서는 당연한 그 문화가 구루메 쪽에서는 당연하지 않다고 한다.

23:27 — 替玉はありません
23:27 — 替玉はありません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말아주신 돈코츠 라멘은 꽤 깊은 맛을 가지고 있었다.

23:31 — 오늘의 마지막
23:31 — 오늘의 마지막

어르신의 따뜻한 한 그릇 덕분에 오늘 하루가 아주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참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밀도 있는 하루였다. 아침에는 산 위에서 이 도시를 멀리서 내려다봤는데, 밤에는 같은 도시의 가장 좁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도시의 속살을 조금 더 들여다본 느낌이다. 오늘의 경험이 남은 시간을 어디로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줄지 기대되는 밤이다.